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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는 공의로우시며 구원을 베푸시며 겸손하여서 나귀를 타시나니 나귀의 작은 것 곧 나귀 새끼니라”(슥 9: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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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5.06.10 18:12 당나귀 기사

우리 그냥 사랑합시다!

우리 그냥 사랑하게 해주세요

 

        2013 9 7, 청계천 광통교의 분위기가 평소와는 조금 달랐다. 청년필름 대표 김조광수 감독과 영화사 레인보우팩토리의 김승환 대표의 동성결혼식 때문이었다. 그들은 ‘김조광수, 김승환의 당연한 결혼식, 어느 멋진 날’이라는 문구와 함께 국내 최초의 공개 동성 결혼식을 진행했다. 청계천 일대는 동성 결혼식을 당연하게 여기는 사람들의 당연한 축하와 이를 당연하게 여기지 못하는 사람들의 당연한 비난이 한데 뒤섞여, 전혀 당연하지 못한 상황을 연출해내고 있었다. 이때, 가장 당연해서는 안 될 상황이 발생했다. 한 남성이 자신의 인분과 된장을 섞은 오물을 투척한 것이다. 그는 자신을 “하나님께서 보냈다”며 “성경 말씀에 동성애를 금지하라 했다. 한 사람의 의인만 있어도 세상은 멸망하지 않는다” 라고 이야기했다. 이 오물투척 사건은 성 소수자들이 처한 현실을 아주 적나라하게 드러냈다. 성 소수자들은 다른 누군가에게 물리적인 해를 끼치지 않음에도 불구하고, 종교인이든 비종교인이든 관계없이 사회로부터 오물 덩어리와 다름없는 낙인이 찍힌 존재들이었다. 어쩌면 이들의 결혼식도 기쁨의 ‘축제’라기보다는 사회를 향한 ‘아우성’ 혹은 애끓는 ‘절규’였으리라. 우리 그냥 사랑하게 해주세요!

일러스트 정담은


성경에 근거하여 여러분은 죄인입니다!

         대다수의 기독교인은 동성애를 죄로 여긴다. 이유는 아주 간단명료하다. 성경에서 동성애를 죄라고 말하고 있기 때문이다. 그렇다면 그들에게 질문을 던지고 싶다. 지극히 평범한 우리는 성경에서 죄로 정죄하는 것들로부터 자유 한가? 지금 말하는 죄는 아담의 불순종으로 인해 창조세계의 질서를 왜곡시켜버린 인간의 원죄를 말하는 것이 아니다. 우리가 정죄하는 동성애와 같이 성경에서 율법으로 정해놓고 정죄하며 금하는 항목들을 말한다. 살인, 강도, 강간, 동성애 등의 항목을 떠올리며 ‘나는 적어도 율법적으로는 그리 큰 죄를 짓고 살지 않는 것 같아.’ 라고 말할 수도 있겠다. 정말 그런 것인지 성경 속의 율법을 살펴보도록 하자.

         1) 창세기 38 8절을 보면 오난이 유다의 씨를 잇기 위해 자신의 형수와 성관계를 하는 장면이 나온다. 이때 오난은 성관계 중 질외사정을 하게 되고, 결국 이것이 하나님 보시기에 악하여 죽음을 면치 못하게 된다. 혹자는 이 구절을 통해 오난의 행위 자체에 문제가 있다기보다, 그 행위를 하게 한 탐욕적인 의도의 불순종이 하나님 보시기에 악했다고 받아들이기도 한다. 하지만 ‘생육하고 번성하라.’ 라는 하나님의 말씀에 따라 구약성경 전체에서 계획된 피임은 허락되지 않는다. 그러므로 피임을 했던, 피임 하는, 피임 할 계획이 있는 여러분, 성경에 근거하여 여러분은 죄인이다.

         2) 레위기 19 27절은 머리 가를 둥글게 깎지 말며 수염 끝을 손상하지 말라고 명하고 있다. , 이발과 면도에 대한 율법을 정해놓고 이를 어기는 것을 큰 죄로 여겼다. 오늘날까지도 정통 유대인들은 옆머리를 길게 길러 땋거나, 수염을 덥수룩하게 기르기도 한다. 비싼 돈 주고 미용실 가서 머리 자르고, 비싼 돈 주고 면도기 사서 면도 하시는 여러분, 성경에 근거하여 여러분은 죄인이다.

         3) 디모데전서 2 9절에서 12절을 보면 여자는 단정하게 옷을 입고 소박함과 정절로써 자기를 단정하며 땋은 머리, , 진주로 치장하지 말아야 함을 가르치고 있다. 또한, 여자는 가르치는 것과 남자를 주관해서는 안 되며 그저 순종하고 조용히 배우기나 하라고 말하고 있다. 미니스커트, 핫팬츠 등을 입고 진하게 화장을 하며 액세서리로 화려하게 치장한 여성분들, 성경에 근거하여 죄인이다. 또한, 대한민국 교육계에 종사하시는 수많은 여성분, 역시 죄인이다. 마지막으로 대통령이 여성인 대한민국, 죄에 빠진 민족이다.

         방심한 채 글을 읽어가다 무방비 상태로 정죄당하느라 기분이 매우 상하셨을 여러분께 사과의 말을 전한다. 조금은 억지스러워 보일지도 모를 저 3개의 율법을 인용한 것은 여러분을 정죄하기 위함도 아니요, 성경이 잘못되었음을 피력하기 위한 이단스러운 주장은 더더욱 아니다. 저 본문들을 통해 우리가 성경을 읽을 때, 글자 그대로를 받아들이고 이해하는 유아적 수준의 성경 읽기에서 벗어나, 당대의 역사, 문화, 사회적인 상황과 배경을 고려하며 성경을 읽고, 그 안에서 살아 숨 쉬는 하나님의 정의와 사랑을 발견해내야 하지 않겠느냐고 말하고 싶었다.

1번에서 말한 창세기 38 8절의 당시 상황을 고려하여 보자. 고대 유대인들은 난자와 정자가 만나야만 생명이 시작된다는 과학적 이해가 없었고, 단순히 정자에서만 생명이 나온다고 생각했다. 따라서 정자를 생명 탄생과 상관없이 흘리는 행위는 살인행위라 믿었다. 그렇기에 오난의 행위는 당시의 관점에선 생명과 상관없이 정자를 죽였다는 점에서 하나님의 진노하심을 받을 수 밖에 없다는 나름의 합리를 가졌다. 동일한 이유로 고대 유대사회는 남성의 자위행위도 금했던 것으로 전해진다. 결국 당시의 유대인들도 그 시대의 한계에서 자유롭지 못한 ‘시대의 아들’이었던 것이다.하지만 과학이 발달하고 정자와 난자가 만나 생명이 된다는 과학적 관점이 일반화된 지금은 질외사정이나 피임, 자위행위 등이 종교적으로 죄가 되지 않는다. 합리의 기준이 바뀐 것이다. 다른 예들이야 따로 설명할 필요도 없을 것이다. 권력과 권위에 대한 나름의 이해와 설명, 노예제도가 당연시되고 여성은 인간으로서의 당연한 권리를 누릴 수 없었던 당대 사회적 구조 등에서 비롯된 성경의 율법들은 결국 성령의 감동으로 성경을 쓴 저자들도 어쩔 수 없는 시대의 아들들이었음을 분명하게 보여준다. 게다가, 우리는 이미 성경의 율법들이 죄로 정죄하고 있는 항목들을 무조건적으로 죄라고 인식하고 있지 않다. ‘성경에서 죄라고 하기 때문에 이것, 저것은 죄야.’ 라는 식의 사고 자체가 굉장히 불편한 억지스러움을 넘어 폭력적인 것임을 이미 부분적으로 확인해오고 있는 셈이다.

 

시대의 아들이 바라본 동성애, 죄의 핵심을 흐리다

         사실 성경은 동성애에 대해 그리 많은 부분을 할애하고 있지 않다. 동성애를 직접 언급하며 정죄하는 본문은 레위기 18 22, 레위기 20 13, 로마서 1 26절 정도가 되겠으며, 간접적으로는 동성애와 같은 성적 문란함이 있었다고 기록된 소돔과 고모라 본문 정도가 있다. 먼저, 동성애를 죄로 정죄하는 구약성서의 율법을 살펴보자. 여기서 눈여겨볼 점은, 역사가 당시 문화권에 레즈비언이 존재했음을 분명히 밝히고 있음에도 불구하고, 구약성서에서 동성애를 정죄할 때는 오직 게이만 언급하고 있다는 것이다. 이를 당대의 사회, 문화적 배경을 통해 바라보았을 때, 결국 동성애, 특히 남자와 남자 간의 성관계는 사회체제에 큰 혼란을 초래하기 때문에 정죄했을 것이라는 추론이 가능하다. 남성 간의 성관계는 자녀 생산의 불가능을 의미한다. , 인구수가 국가의 노동력과 군사력, 국력과 즉결되던 고대 사회에서 종족 유지와 번성의 의무를 지니고 있는 남성들이 자녀 생산을 할 수 없는 풍조에 물드는 것은 국가에 있어 시한부 선고와 다를 바가 없었다. 그러나 여성은 이러한 의무로부터 비교적 자유로웠다. 여성 간의 성관계는 종족유지 및 번성에 있어 심각한 위기를 초래하는 문제는 아니었다.

        사회의 주류 지배계층이던 남성이 여성의 위치로 전락한다는 것 역시 당시의 가부장적 체제를 위협하는 요인이 되었을 것이다. 마치 미국에서 흑인 차별이 절정에 치달을 때, 백인과 흑인의 연애를 반대했던 것과 똑같은 논리이다. 당시의 기준으로 백인보다 열등한 인종으로 여겨지던 흑인이 백인과 동등한 지위를 가지게 되면서 차별을 공고히 해온 체제에 균열이 생기게 된다는 것이다. 하지만 오늘날, 그 누구도 흑인과 백인의 결합을 체제에 대한 위기로 받아들이지 않는다. , 동성애에 대한 정죄 역시 성서가 쓰인 시대의 체제와 문화의 산물로 받아들일 수 있다는 점이다. 다음으로는 모두가 잘 알고 있는 소돔과 고모라 본문을 보도록 하자. 창세기 18~20장에는 소돔과 고모라의 멸망 사건이 다루어지고 있다. 많은 사람이 이 본문을 동성애 혐오의 근거로 삼고 있는데, 성경 어디에서도 소돔과 고모라의 멸망의 근본적인 원인을 동성애에서 찾지 않는다. 오히려, 소돔과 고모라의 죄를 동성애보다 ‘이방인에 대한 폭력’의 차원에서 보는 것이 더 성경적 세계관에 합당하다. 창세기 19장에 나오는 무리의 요구도 이러한 관점의 연장선에 있다. 고대 아랍, 그리스, 중동에서는 길을 가는 낯선 사람을 하나님의 천사로 여겼으며 이방인에게는 환대를 해주는 것이 윤리의 가장 근본이요 기초였다. 외국인이나 여행자 또는 이주 노동자는 보호받지 못하는 사회의 가장 취약한 구성원이었고, 이스라엘 사람들 자신도 이집트 땅에서 외국인이었으므로 이주민을 특별한 배려로 대하는 태도가 윤리적 행위로 강조되었다. 이런 관점에서 롯의 집에 거한 두 천사, 이방인을 요구한 그들의 행위는 ‘동성애를 위한 음욕’이라는 차원을 넘어 ‘약자에 대한 강제적인 폭력’이라는 근본적인 윤리 차원의 죄였다. 결정적으로, 성경은 소돔과 고모라의 패역함에 대해 분명하게 언급하고 있다.


주 여호와의 말씀이니라 내가 나의 삶을 두고 맹세하노니 네 아우 소돔 곧 그와 그의 딸들은 너와 네 딸들의 행위 같이 행하지 아니하였느니라 

네 아우 소돔의 죄악은 이러하니 그와 그의 딸들에게 교만함과 음식물의 풍족함과 태평함이 있음이며 또 그가 가난하고 궁핍한 자를 도와 주지 아니하며

거만하여 가증한 일을 내 앞에서 행하였음이라 그러므로 내가 보고 곧 그들을 없이 하였느니라

<에스겔 16:48-50>

, 소돔과 고모라 멸망의 중심에는 ‘약자에 대한 폭력, 이웃에 대한 무관심, 끝없는 탐욕의 추구’가 자리 잡고 있지만, 애먼 동성애가 본문의 핵심을 흐리고 있다고 볼 수 있다.

 

'Grace', 'Amazing grace' (출처: 갓피플)

개똥도 약에 쓸랬더니 정죄나 하고 자빠졌다.

          ‘그래서 네가 하고자 하는 말이 무엇이냐?’라고 묻는다면 결국 예수의 도를 따르고자 하는 사람으로서 이 대답밖에 할 수 없지 않나 싶다. “하나님 사랑하고, 이웃 사랑합시다.” 성서도 결국 시대와 체제의 산물이다. 피임, 이혼, 여성의 권위에 대해 죄를 묻는 것이 합리적이라고 인식됐던 시대가 있었고, 가부장적 체제가 무너지면 사회 전반이 무너진다고 생각했던 시대도 있었다. 하지만 수천 년이 지나도록 변하지 않는 단 한 가지가 있다면, 그것은 바로 성서 전반을 통해 흐르는 하나님의 성품인 ‘사랑’이다. 하나님의 사랑과 자비, 정의와 공의는 구약과 신약을 통해 줄기차게 흐르고 있으며 이는 오늘날에도 여전히 그러하다. 애초에 완벽과는 거리가 먼 개똥 같은 인간을 불쌍히 여기시고 사랑하셔서, 병들어가는 세상에 약에라도 써보고자 하나님이 우리를 받아주시고 구원하셨다는 것이 성서의 기본 전제이다. 그러나 오늘날에는 병을 고치는 약이 되라고 쓰임 받은 개똥들이 주제도 모르고 마치 하나님이라도 된 것 마냥 심판자의 자세로 소똥, 말똥을 정죄하고 있다. 교회는 성서 전반에 흐르는 가장 큰 복음, 어떠한 억압과 차별, 불의와 탐욕, 가난한 사람들에 대한 무관심으로부터의 해방’에는 무관심한 채, 성서를 ‘성에 대한 억압과 차별을 통해 사람들을 때려잡는 무기’로 둔갑시켜나가고 있는 것 같다. 동성애 기독교인의 삶을 다룬 <밀크>, <바비를 위한 기도>, <로빈슨 주교의 두 가지 사랑>  같은 영화를 보면, 편견이라고 하는 것이 얼마나 폭력적일 수 있는지를 날카롭게 보여준다. 동성애가 죄냐, 아니냐를 떠나서 그렇게 다른 사람을 지나치게 정죄하는 태도는 매우 반기독교적이며 적그리스도적인 것이다.

이론신학의 권위자인 시카고 신학대학 테드 제닝스 교수는 “사랑은 정죄가 아니라 오히려 율법의 본질을 완수하게 해주고 하나님을 기쁘시게 하는 정의를 실현하는 유일한 수단”이라고 말했다. 제발 권면이랍시고, 사랑이랍시고 성경을 근거로 마구 정죄해대는 개똥들이 우리 한동에는 없었으면 좋겠다. 오히려 한동의 수많은 개똥이 뜨거운 고민과 나눔을 통해 더욱더 좋은 약이 되어야 하지 않을까. 그래서 그 언젠가, 나를 비롯한 이 땅의 수많은 개똥이 똥내를 풍기기보다는 병든 세상에 약내를 풍기게 되길 간절히 소망한다.

 

<출처>

성서는 동성애를 긍정한다 3시대 그리스도교연구소, 퀴어신학자 테드 제닝스 강연회 개최”, 미디어 일다, 2010.06.09, 박희정

“’동성애 지지하지 않을 자유가 성립할 수 없는 이유”, 한겨레, 2014.12.08, 이재훈

성경이 동성애 금지? 성경대로라면 이혼도 자위행위도 정죄해야”, 한겨레, 2014.12.10, 이재훈

오경개론”, 크리스챤다이제스트, 2007, 빅터 해밀턴

구약의 동성애 법”, 신앙과 학문 142, 2009, 신득일


김대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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